[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작은 다리(산정교)를 하나 건너자 이제 길은 오르막길이다. 고갯길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오른쪽에 가지가 길 쪽으로 늘어진 대추나무가 나타난다. 이 지역은 대추나무가 잘 되는가 보다. 앞서가던 사람이 대추를 따서 먹어 보더니, 맛이 좋다고 소란을 떨었다. 뒷사람도 대추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집주인 여자가 나타나 앙칼진 목소리로 야단을 친다. 남의 대추를 함부로 따먹는다고. 우리는 당황하여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를 한마디씩 했다. 나도 큰 소리로 ‘미안합니다’라고 외쳤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이 맞는가 보다. 우리가 모두 미안하다고 하니, 주인 여자는 우리를 째려보더니 그냥 들어가 버린다. 휴우, 다행이다. 지나가면서 자세히 보니 대추나무를 심은 집은 살림집이 아니고 ‘한반도 식당’이라는 이름의 간판이 걸려 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인심이 사납다고 생각되었다. 출발한 직후 길가에서 대추를 따 먹었을 때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그런데 길가로 뻗어 나온 가지에서 대추를 따 먹는 행동이 죄가 될까? 예를 들어 담장을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서 감을 따 먹으면 어떻게 되나? 궁금할 때는 슬기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코로나19의 변이체인 오미크론에 감염된 뒤 후유증으로 극도의 무기력과 피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증상은 크게 볼 때 2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과도한 면역과정, 곧 바이러스 침입에 대응하여 온몸의 세포가 모든 일을 팽개치고 결사적으로 싸우다 보니 세포의 활동이 극성해지다가 탄력이 저하되어 드러난다. 다른 하나는 면역과정 중 과부하에 걸린 장부가 완치된 뒤에 정상적으로 복구되지 못해서 무기력해진다. 따라서 코로나19의 감염증상에서 정도가 심하였을 때는 완치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세포의 활력이 회복되지 않고 장부의 기능이 저하되어 피로와 무기력이 지속하게 되는데 특히 지병을 앓거나 건강에 취약점이 있는 경우에는 그 증상이 더 심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회복이 안 되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따라서 코로나 후유증이 의심되는 피로와 무기력증이 드러났을 때 기존의 내 몸 상태가 증폭되어 드러난 모습인지, 새롭게 생긴 모습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드러난 증상에 따라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1. 자연의 리듬과 동조하라 - 총체적 무기력, 의욕저하, 졸림 ‘몸에 기운이 없다’라고 할 때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소가야 벌안으로 달빛도 푸르른 날 생과부 속심지 울음 울며 타는 밤에 저만치, 껑충 멀대 같은 허연 귀신 몸짓보아 오오매 엉덩짝 둥실, 풍만한 달무리 손톱으로 퉁겼다가 품 안에도 품었다가 아아, 메구패 따라 남정네도 집 나간 텅 빈 마당 위로 바람은 건들 밤꽃 내음만 흩뿌리고 떠나는데 귀신아, 왜 달 밝은 밤이면 논둑에 나와 애써 다독인 마음 이리 아리게 흔들어 쌓노. 굿거리 굿거리장단에 덩실 달은 구름 속에 숨고, 어느새 한 마리 백학 되어 학춤으로 노닐다가, 머언 절간 세속의 연 못내 끊지 못한 비구니 속내 들추이는 승무도 펼칠 즈음, 설핏 꿈결엔듯 거류산 소롯길로 희뿌염 아침은 와, 한 농부 다랑논엔 피 반 나락 반인 게으름만 지천이라. 웃논에 물 대고 오는 실한 농부 탓하기를, “에라이, 온 만신의 피! 피나 뽑고 춤이나 추지.” ※ ‘만신의 피’: 허종복(1930-1995)의 별호. 조용배와 함께 고성오광대를 이끌던 예인. <해설> 이를테면 ‘만신의 피’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먼저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시에선 벼 심은 들판에 피를 뽑지 않아 ‘피 반 나락 반’인 논을 말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는 군대생활을 꽤 영리하게 하셨던 것 같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단순하게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군 생활이었을 텐데, 아버지는 그 상황에서도 무엇이 돈이 되는 일인지가 보이셨다고 한다. 미군이 주는 보급품이 그 시절 중요한 공산품이었고, 또 그것을 잘만 활용하면 군생 활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전쟁 중이라 부대가 이동할 때, 혹은 퇴각할 때 수 많은 물품이 버려지거나, 혹은 적군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소각하고 떠나게 되는데,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당시 꽤 쏠쏠한 돈벌이도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적당히 협조만 해 주면 장교들이 미국이 주는 보급품으로 장사도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흘러나간 물건들이 부산 국제시장 같은 일명 양키시장으로 가서 일반시민들도 사서 쓰는 미제물건이 되는 것이라 하셨다. 어떨 때는 새로 전입해온 보급담당 장교 하나가 너무 무리하게 중간에서 가로채는 것을 보시고,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셨다고 생각되셨는지 그 장교를 불러서 엄청나게 두들겨 패 줬다고 하셨다. 사실 한참 전쟁 중만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영창을 가거나 엄청난 징계를 당하셨을 텐데, 평소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코로나19를 비롯한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호흡기 통로를 통해 유입되어 침입한다. 이를 막기 위한 내 몸의 반응이 면역과정인데 일상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전쟁상태며 대부분 가볍게 이겨내기 때문에 표시가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이러한 내 몸의 방어 시스템에 의하여 제대로 침입도 하기 전에 발각되어 정리된다. 간혹 빈틈을 허용할 때 깊숙이 파고들어 와서 감기라는 상태를 만든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일부의 바이러스는 내 몸이 틈을 허용하지 않는 중에도 침입해서 내 몸을 망가트리려 한다. 오미크론 같은 경우는 콧속(비강)과 편도(아데노이드)를 건너뛰어 인후부를 공략한다. 전쟁에 견준다면 국경 방어선 두 곳을 건너뛰어 곧장 인후라는 깊숙한 내부에 낙하산을 타고 와 공습을 한 형태라 할까? 따라서 최근에 확산하여 유행하는 코로나 오미크론의 감염은 인후의 부종과 통증이 심한 증상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목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호소할 정도로 인후의 부종과 통증이 심해서 음식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판정을 받은 뒤에도 후유증을 남긴다. 인후의 부담이 점막에 국한된 때에는 증상이 가라앉으면서 1주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부지깽이도 모 찌러 가는 오뉴월 한방장을 훠이훠이 풍채 좋고 신수 훤한 조한량 거동 보소. 풀 멕인 도포 입고 꿩털 처억 높게 꽂은 중절모 눌러쓰고, 명무(名舞)에 붓 한 자루, 손기름 자르르 밴 단소도 동무하니 이만하면 근 달포 지낼 노자 마련은 되었것다. 오냐 가보자 어여 가보자 물 뎁히지 않아도 암탉이며 도야지 솜털까지 죄다 벳긴다는 돈 많고 한량 많은 동래하고도 펄펄 끓는 온천장이 아니더냐. 왜인(倭人)들 떼로 몰려 떼돈 쓰고 나자빠지는 동래 권번(券番)이 거기라면 오냐 놀아보자 화선지 펼쳐놓고 치자 하면 설중매에, 쓰자 하면 초서에다 추어라 하면 나붓나붓 춤사위도 으뜸이니 보아라, 천하의 조금산이 풍류여행 떠나신다 ※조금산 : 호는 금산, 이름은 조용배 (趙鏞培1929-1991). 고성오광대를 이끌던 예인. <해설> 본격적으로 오광대놀이에 들어가기 전에 중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시조다. 지난 회에 실었던 「길 떠나는 광대」가 4수의 평시조를 엮은 연시조라면 이번 것은 사설시조다. 초장과 종장은 평시조 형식을 따랐으나 중장을 길게 늘여 넌출넌출 앞말이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을 섬기며 넝쿨처럼 이어지는 사설의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탐구하고 있는데 조선 대일외교의 기틀을 세운 이예(1373, 공민왕 22∼1445, 세종 27)가 그 한 사람이다. 원래 울산군 관아의 중인(中人) 아전 출신인데, 태조 5년(1396) 왜적에게 잡혀간 지울산군사 이은(李殷) 등을 구하기 위해 자진하여 대마도까지 잡혀간 뒤 외교력을 발휘하여 군수와 함께 돌아왔고, 그 공으로 아전의 역에서 면제되고 벼슬을 받았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군수를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목숨을 걸고 왜구의 배에 올라탄 일이 외교관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의 생애와 활동을 보자. 생애와 활동 ∙ 정종 2년(1400) : 어린 나이로 왜적에게 잡혀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자청해 회례사(回禮使) 윤명(尹銘)을 따라 일본의 삼도(三島)에 갔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 태종 1년(1401) : 처음으로 이키도[壹岐島]에 사신으로 가 포로 50명을 데려온 공으로 좌군부사직에 제수되었다. ∙태종 6년 윤7월(1406) : 일본 회례관(日本回禮官)으로 사로잡혀 갔던 남녀 70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 태종 10년(1410) : 해마다 통신사가 되어 삼도에 왕래하면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낮 12시 45분에 일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하였다. 이날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서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신선했다. 걷기에 알맞은 좋은 날씨였다. 일행 가운데 70이 안 되는 젊은 여성이 둘이나 끼게 되자, 70을 넘은 중년 남성들은 모두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음양이 섞여야 조화가 이루어지나 보다. 이전 답사와 달리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대화도 딱딱하지 않은 주제로 이루어진다. 지구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태양을 돌고 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9월 23일)이 지나자 평창강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다. 계절의 변화는 정확하기만 하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아직은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길가에 보이는 들풀들은 어느새 잎이 시들면서 말라가고 있다. 밭에 있는 곡식들과 열매를 맺는 나무들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내가 본 농작물로서는 벼, 수수, 율무, 무, 파, 호박, 고추, 배추, 해바라기 그리고 대추였다. 출발하자마자 작은 언덕을 넘어 내려가는데 왼편 길가에 대추나무가 있었다. 잘 익은 대추가 손 닿는 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내가 대추를 하나 따서 먹어보니 약간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현재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은 확산세는 빠르지만, 위중도는 낮다고 발표되고 있다.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에 비해 위중도가 1/4로 경미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증상과 유사하게 콧물, 두통, 기운 없음, 잦은 기침, 가래, 재채기, 인후통이 드러나며 델타 변이에서 보였던 발열, 설사, 미각ㆍ후각 소실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에 함정 아닌 함정이 숨어있는데 오미크론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에 위증증을 앓는 절대수가 늘어났으며 델타 변이에서 보였던 증상이 병행되어 심한 고초를 겪는 분들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무사히 1주일을 넘기고 완치를 확인했더라도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다. 한 가지 이상의 증상이 남아있다고 호소한 환자가 87%나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코로나19 후유증은 초기 코로나19부터 델타 변이 시점에도 꾸준히 발표되었으며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오미크론에도 존재한다. 기존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폐기능 저하, 탈모증, 피로감, 근육약화, 수면장애(불면증), 후각장애, 미각장애, 섬망증(주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와 음식을 먹는 일은 내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인가 맛있다고 해서 많이 드시지도 않고, 그리고 그것만 자주 드시지도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고 당신께서 드시고 싶어 사 온 것이라 해도 딱 한 끼니만 드시면 거의 젓가락을 대는 일이 없으셨다. 그런데도 시장에 가거나 상점에 가면, 뭔가 자잘하게 사는 것을 싫어하시는 성격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아마도 가장 큰 문어를 통째로 사 오신 적이 있으셨다. 이 문어의 크기는 지금도 가끔 텔레비전에나 나올만한 크기의 문어였는데, 내 기억으로는 머리부터 다리까지의 길이가 족히 2m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 문어였다. 시장에서 이 문어를 보는 순간 뭐에 홀린 것처럼 사게 되셨단다. 그 문어를 집에 가져와서 다리 하나씩 잘라 작은아버지 집에 보내고, 동네잔치를 한 다음에도 몇 주간 그 문어를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뒤론 문어를 잘 먹지 않는다. 우리가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살 때도, 당시 전자대리점에서 다리 달리고 문도 달린 가장 큰 20인치 텔레비전을 구입하셨다. 사실 지금으로 보자면 화면의 크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