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들은 정력보강을 위한 음식으로 무엇을 좋아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검은콩, 검은깨, 오골계(烏骨鷄), 흑염소에다 검정소 등등 온통 ‘검은색 음식’이었습니다. 연산군의 정력제 목록에 들어 있는 ‘용봉탕(龍鳳湯)’에도 오골계가 쓰였고, 장희빈에 푹 빠졌던 숙종도 오골계, 흑염소, 검은깨를 즐겨 먹었다고 하지요. 그렇게 임금이 검은색을 즐긴 까닭은 검은색이 오장 가운데 신장에 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콩팥뿐만 아니라 고환을 포함한 비뇨생식기 전부와 성호르몬을 비롯한 호르몬을 통 틀은 개념으로써 원기의 바탕이며 음기와 양기의 근원으로 봅니다. 우리 겨레는 “식약동원(食藥同源)” 다시 말하면 음식이 곧 약이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 개념을 바탕으로 궁궐에서는 검은색 음식이 뼈와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기억력을 좋게 하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귀를 밝게 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하고 정력을 강화시키며 노화를 방지하는 약으로서의 구실을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계집은 돌리면 버리고, 그릇은 빌리면 깨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조선의 남성들이 만든 말로 혹시나 자기 집 아낙네들이 잘못될까 봐 걱정한 탓에 생긴 말입니다. 그런 걱정 탓에 한옥의 구조는 먼저 대문을 들어서면 남성 공간인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를 지나면 “내외벽”이 가로막은 채 “소문(小門)”이라는 출입문을 들어서야 그 안에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가 있었지요. 양갓집 미혼 처녀를 “규수(閨秀)”라고 했는데 이 말의 색시 “규(閨)” 자는 흙 토(土)가 포개어져 있는 것으로 담장이 쌓여 있는 깊은 곳에서 사는 처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안채는 식구들이라도 남성은 드나듦이 어려웠고, 만약 안채에 자주 드나드는 사내가 있으면 “암띤 사내”라는 놀림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또 “사내가 부엌에 드나들면 불알 떨어진다.”라고도 했지요. 이렇게 갇힌 공간에서 살았던 여성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바깥출입을 못했으며, 굳이 나갈 일이 있으면 쓰개치마 등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얼굴을 가린 채 엉덩이만 봐야 하는 답답함이 오죽 컸으면 "엉덩이를 보면 어
예전 선비들은 책과 멀리 떨어져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꼭 있어야 하는 서안은 선비의 벗이었지요. 서안(書案)은 글을 읽거나 글씨를 쓰거나 간단한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낮은 책상으로 모양에 따라 궤안(机案)과 경상(經床) 두 종류로 나뉩니다. 궤안은 보통 선비들이 쓰던 것으로 단순한 형태의 것이나, 경상은 절에서 불경을 얹어 놓는 것으로 여의주 무늬, 당초 무늬 등을 새겼습니다. 하지만, 뒤에는 이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고 선비들도 경상을 사용하였지요. 서안은 주로 사랑 손님과 마주 대하는 주인의 위치를 말해 주기도 하나, 지체 높은 집에서는 안방에도 갖춰놓고 사용했습니다. 한옥 처마처럼 양끝이 위로 살짝 비켜 올라간 서안은 수수하지만 가볍지 않은 품위가 느껴집니다. 처마, 저고리의 섶코, 버선코와 같은 한국의 아름다움이지요. 언뜻 보아도 단단하게 보이는데 제주도의 산유자나무, 전라도의 먹감나무, 대청도의 늙은 뽕나무로 만든 것을 으뜸으로 알아줬습니다. 조선의 서안은 장인들의 솜씨와 선비들의 멋이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품
오늘은 24절기 중 열 번째인 하지(夏至)입니다. 하지 무렵에는 장마와 가뭄 대비도 해야 하므로 한해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쁠 때이지요. 메밀 씨 뿌리기, 누에치기, 감자 거두어 들이기, 고추밭 매기, 마늘 거두기와 말리기, 보리 거두기와 타작, 모내기,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대마 거두기, 병충해 막기 등이 모두 이 즈음 이루어집니다. 특히 하지가 지나면 모심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서둘러 모내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지요. 또 하지 무렵이면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데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뜻으로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또한,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지요. 강원도 평창군 일대에서는 하지 무렵 감자를 캐어 밥에다 하나라도 넣어 먹어야 감자가 잘 열린다고 합니다.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하지가 지나면 보리가 마르고 알이 잘 배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예전에 단오는 우리 겨레의 큰 명절이었는데 이 날은 여러 가지 세시풍속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농가의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단오날의 화장)'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나쁜 일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지요. 또 단옷날 새벽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들은 단옷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을 가졌었지요. 단옷날 중에서도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으로 생각하여 농가에서는 약쑥, 익모초, 찔레꽃 등을 따서 말려둡니다. 오시에 뜯은 약쑥을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면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었고, 창포술 등의 약주를 마셔 재액을 예방하려 하였습니다. 단오의 시절음식으로는 수리떡과 약떡이 있지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이 날은 쑥잎을 따다가 찌고 멥쌀가루 속에 넣어 반죽을 하여 초록색이 나도록 하여 이것으로 떡을 만드는데 수
오늘은 우리 겨레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단오 입니다.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지요.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의 뜻으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합니다. 중오(重五)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5월 5일을 뜻하는 것으로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고 생각하는데,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 하여 '양의 수'를 좋은 숫자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이 양의 수가 중복된 날은 명절로서 단오 말고도 설(1월 1일)·삼짇날(3월 3일)·칠석(7월 7일)·중구(9월 9일) 등이 있지요. 이날은 쑥떡을 해먹는데, 쑥떡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다고 해서 토박이말로는 '수릿날'이라고 불립니다. 수리란 고(高)·상(上)·신(神) 따위를 뜻하는 우리의 옛말로 '신의 날', '최고의 날'이란 뜻에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다른 말로는 모함을 받은 중국 초
"조개는 잡아서 젓절이고 가는 님 잡아서 정들이잔다” 위 노래는 서도민요 중 “긴아리”의 한 대목입니다. 서도민요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불리는 민요를 말하는데 위 가사처럼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많이 불리는 서도민요에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배따라기, 영변가, 긴아리, 자진 염불,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사설난봉가, 사리원난봉가, 몽금포타령 따위가 있지요. 노래는 거의 일정한 장단이 없으며, 간혹 있더라도 사설을 따라서 적당히 쳐주는 불규칙한 장단법입니다. 창법은 콧소리로 얕게 탈탈거리며 떨거나, 큰 소리로 길게 뻗다가 갑자기 속소리로 가만히 떠는 방법 등으로, 애절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해학이 그득합니다. 요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이 토종소리극 “향두계놀이”와 창작소리극 “채봉전” 등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고 이십 리 못 가서 불한당 만나고 삼십 리 못 가서 되돌아오누나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매러 간다. 사람
우리나가 최초의 조리서는 1459년 무렵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어의 전순의의 ≪산가요록(山家要錄)≫입니다. 산가요록은 그동안 최초의 조리서로 알려졌던 ≪수운잡방(需雲雜方)≫보다도 앞선 책입니다. 산가요록은 산가(山家) 곧 민가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기록해 놓았다는 뜻이지요. 산가요록은 배추김치, 송이김치, 생강김치, 동아(박과의 한해살이 덩굴 식물)김치, 토란김치, 동침, 나박김치 등 38가지의 김치 담그는 법이 쓰여 있습니다. 또 63가지의 술 빚는 법은 물론 생선, 양, 돼지껍질, 도라지, 죽순, 꿩, 원미(쌀을 굵게 갈아 쑨 죽)를 재료로 한 식해도 7가지나 기록되어 있으며, 다과와 탕류의 조리법 등 무려 121가지의 요리법이 소개돼 있지요. 그리고 동절양채(冬節養菜) 곧 “겨울에 채소 기르기” 편에서는 “겨울철에도 채소를 먹으려면 새로운 영농기법이 필요한데, 겨울철에도 채소가 자랄 수 있는 온실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기록이 있어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온실재배가 가장 빨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하면 “물허벅”이나 “물구덕”을 떠올립니다. 제주해녀가 등에 지고 있는 그림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이렇게 허벅은 예부터 물이나 죽 또는 씨앗을 담아쓰던 요긴한 생활용구였습니다. 그러나 씨앗을 담는 경우에는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생겨난 것이 '부개기'입니다. 부개기는 씨앗을 갈무리해주는 씨앗 주머니인 셈이지요. 짚으로 망태기 엮듯 만든 것인데 제주도의 작은 물동이인 “대배기”와 비슷합니다. 특이한 모습이 귀엽기까지 한데 “씻부개”, “씻부개기”라고도 부릅니다. 씨앗을 부개기에 담아 갈무리하면 공기가 선선하게 잘 통하여 한겨울 동안 갈무리해두어도 그 속에서 움이 트거나 썩는 일이 없습니다. 부개기는 짚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활용한 살림살이의 하나로 공기 순환이 좋고 습기도 스며들지 않아 씨앗은 물론 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농산물을 보관하는데 더 없는 물건입니다. 제주 어른들은 통통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아이들을 만나면 “어! 그놈 부개기처럼 복시락허다.”라고 했다는데 이는 부개기의 통통하면서도 귀엽고 앙증스러운 맛을 말함입니다.
1462. 기생, 그들은 품격있는 예술인이었다 1939년에 나온 ≪모던일본≫ 조선판에 보면 “기생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라는 글이 나옵니다. 여기에 나온 수업시간표를 보면 국어, 작문, 독해, 서화, 가곡, 잡가, 성악, 예절교육 그리고 무용, 시조, 악전(樂典)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국어라 함은 일본어를 말하는 것이고, 내지노래는 일본노래를 말합니다. 일본어와 주로 기악가무 등이 이들 수업의 전부입니다. 그러면서 잡지는 “양반들이 유유자적하면서 위엄을 잃지 않는 분위기로 노래하는 가곡, 읊조리는 풍의 시조, 마음 깊은 곳에서 짜내듯이 비장한 남도소리, 혹은 애절하게 가슴을 울리는 아리랑, 서도소리 추심가, 그리고 로맨틱한 도라지타령, 에로틱한 속가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전부 배워야 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학(妓學, 기생공부)을 시킨 것은 그들이 사회에 나가 ‘조선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총독부 파견 관리들과 노는데 말이 통하게 하기 위해서지요. 실제로 이 잡지에서는 자주 ‘기생들의 좌담회’를 여는데 이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자기들이 모신 일본인 아무개는 ‘마음씨가 좋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으로